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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5월,


미국 육군항공대 소속 B-29가 일본 구마모토현 부근에서 격추되었다.


<보잉사의 폭격기 B-29>


B-29 승무원 12명은 낙하산으로 탈출하였고,


3명이 죽고 9명이 살아 남았다.



일본 대본영은


"기장인 마빈 왓킨스만 도쿄로 보내고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명령


<Marvin S. Watkins 중위>


서부군 사령부 (사령관 요코야마 이사무 중장)에서는


나머지 8명을 재판 없이 사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규슈국제대학 외과대학 출신


코모리 타쿠라는 군의관읜 생체실험을 사령부에 제안한다.


사령부의 허락 하에 미군 포로 8명을 대상으로


1945년 5월 17일~6월 2일 사이 생체 실험이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군인들과 규슈국제대학의 의대 교수들이 참가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엔군 최고 사령부는


의사 14명, 군인 11명을 체포하여 재판에 넘겼다.


의사 중 한명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


군사법정에서 5명은 교수형, 18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일본 규슈대학에서 진행한 생체 실험은


1)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아 피를 빼내고 대신 바닷물 주입


2) 심장을 정지시켰다가 다시 살리기를 반복


3) 폐, 뇌, 간 등 중요한 장기를 잘라내는 실험


4) 피를 얼마나 흘리면 죽는지 확인하기 위하 ㄴ실험




전부 얼마나 사는지 보려는 것이다.


물론 실험 대상들은 전부 사망했다.


기장이었던 마빈 왓킨스만 실험 대상이 아니기에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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