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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허덕이며 해야만 하는 일들을 처리하고 또 처리했음에도 여전히 눈 앞에는 끝도 없이 쌓여있는 일들을 마주할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나날들이 반복되면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어느덧 기차나 버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미지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렇게 떠난 여행에서도 우리는 늘 불안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때 느끼는 불안과 무기력감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에서 비롯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내게 주어진 자유를 주체할 수 없어 불안할 때가 있다. 불교에서라면 속세의 규칙에 길들여진 어리석은 중생의 불안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깨달음의 반열에 오른 부처가 될 수 없듯, 어리석은 중생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로워지는 삶을 갈망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자유는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고 옥죄어온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우리는 어느덧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 불안해한다.



이미 세워놨던 계획은 생각과 맞지 않기 마련이고, 계획하지 않고 다니는 여행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도 머나먼 타국에서 주어진 자유 속에서 역설적으로 불안해한다.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강박적이 되기 마련이고, 시간은 제한적이나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영국에 왔으니 한번 구경은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들리게 되는 대영박물관.


영국이 수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시절,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해 온 각종 유적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박물관이다. [입장료 역시 무료]




하지만 평소 유물, 유적 등에 관심이 없던 나는 대영박물관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웅장한 모습의 건물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 넓은 대영박물관을 구경하는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관이 흥미롭긴 했으나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보는 것만 못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수 많은 유물을 보며 그것들에 감동을 받기는 커녕 역시 그 나라의 유물과 유적은 그 나라 안에 있는 박물관에 직접 가서 봐야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오아시스의 앨범 커버를 찍은 노엘 스트릿(Noel Street)가 눈에 띈다. 구글맵을 검색해보면 실제 Noel Street라는 이름의 거리가 존재한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노엘 갤러거의 이름을 딴 거리인지, 혹은 크리스마스의 다른 이름인 Noel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거리 이름이 먼저 생겨나고 노엘이 자기 이름을 따서 지은 거리라며 앨범커버를 촬영했을 것 같은 느낌같은 느낌이 든다.




저 멀리 앨범 커버에서 보았던 익숙한 건물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네모반듯한 건물이 오아시스의 앨범 커버에 등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렇게 찾아간 노엘 스트리트는 기껏해야 두 블록 정도의 작은 골목길이다. 처음 노엘 스트리트라는 표지판이 보인 길에서 몇 블록 더 들어가니 앨범의 커버를 찍은 곳과 같은 모습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차들이 여러대 있지만 분명 오아시으 2집 앨범 커버를 촬영했던 장소다. 분명 오아시스의 멤버들도 이 거리를 바라보고 이 거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현실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 내가 지금 이곳에 어떻게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수 없이 떠올랐다.


유럽여행에서는 이렇게 현실로 직접 마주치고 있음에도 전혀 현실 같지 않은 순간들이 종종 있다. 사진으로만 보고 동경해오던 장소를 실제로 내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 그 기분이란. 정말 여행에서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느낄 수 없는 경험일테다. 실제같지 않은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기분은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좋은 자극이다.


런던에서 오아시스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을 앨범의 커버를 직접 찍은 곳에 서서 듣고 있었던 그떄의 그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내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도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내 표정을 보고선 다들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영국 제 2의 애국가라고도 불리는 Wonderwall을 부른 밴드 오아시스에 대한 그들의 애정 어린, 그리고 자부심 넘치는 시선이었다. 나는 그 거리에 한참 서서 그들을 부러워하며, 오아시스를 느끼고 내 생에 잊지 못할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Noel Street에서 벗어나 코벤트 가든 마켓으로 향해본다.



코벤트 가든 마켓은 영국에서 가장 큰 마켓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장과도 같은 곳이 바로 이런 크고 작은 여러 마켓들인데, 직접 가서 본 느낌은 시장보다는 복합 쇼핑몰에 더 가까웠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장보다 깔끔했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도착했을 때 코벤트가든 마켓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니 혼자라는 외로움도 잊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불문하고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필요한 기념일일지도 모르겠다.





코벤트 가든 마켓의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에 달려 있는 커다란 공 모양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사람들 역시 삼삼오오 모여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나도 어딘가 앉아 차분하게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그저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나는 여행 내내 그랬다. 소심했다. 외국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씩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여행법이 존재하기 마련.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것도 즐겁지만 그것보다 조용히 사람들을 감상하는 편이 더 즐거우니까.



원문: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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