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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전쟁 당시에 본인 혼자 살겠다며,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쳤다고 하여 생긴 별명 : 런승만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국민 여러분, 서울은 안전합니다. 서울을 끝까지 사수하십시오"라는 거짓방송을 퍼트리고 자기혼자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해서 생겼는데.


이게 그럼 사실인지 어떤게 진실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한국전쟁 발발하기 전 38도 부근에선 크고 작은 전투들이 발발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북한의 공격은 38도선 전역에서 전면으로 기습공격한 전투가 아닌 전쟁을 간주되었음.


북한의 공격을 전혀 예상치 못한 남한측은 전쟁 발발 직후 적잖게 당황한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통신시설, 위성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으로 남침을 당하였고, 심지어는 발발 하루전엔 1950년 6월 24일 국군 간부,


병사 1/3 이상이 외박, 휴가로 부대에서 주둔하는 상태가 아닌 각자의 가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남한 정부는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대표적인것이 바로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정쟁 발발 후 한강다리를 끊음으로 다리를 건너고 있던 500여명의 민간인이 다리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한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주도하에 다리를 폭파했다고 한다.





진실은 ?








좌성향이 강한 위키백과, 이승만에게 절대적으로 호위적이지 않은 위키백과에 나와있는 자료임.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강다리 폭파명령은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이 지시했으며,


최창식 대령이 직접 폭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후 폭파책임을 물어 이승만 정권은 9월 21일 부산에서 최창식 대령을 사형시켰다는 괙트를 볼 수 있음.


이승만은 전후상황을 따져보1지 않은 죄, 독단적으로 행동한 죄를 물어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을 사형하려 했지만,


전쟁 中 전사하여 최창식 대령을 총살한다.


이것이 괙트이다...




여기서 극좌들의 생각 : 이승만 지가 끊어놓고 실수 덮으려고 채병덕 죽이고 최창식 사형시킨 것 아니냐?


미안하지만 음모론은 그만.


'히틀러가 여자였다, 자살한것이 아니라 사실 오래오래 살다 병사로 죽었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다른 의문.


'이승만이 거짓방송을 틀어놓고 혼자 외국으로 도망쳤다?"



1950년 06월 27일 이상만의 실제 방송문(축약)

지난 몇 달간 나는 미군의 군사 원조가 임박했다고 주장했으나, 민주주의 국가가 그러한 원조를 실현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적군은 전차, 전투기와 전함으로 서울에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 국군을 싸울 것들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 암울한 상황에 직면하여 나는 도쿄와 워싱턴에 연락하여 현 상황을 설명했고, 마침내 나는 오후에 맥아더 장군의 전보를 받게 되었다.


맥아더 장군은 우리에게 수 많은 유능한 장교들과 군수 물자를 보내는 중이며, 이는 빠른 시일내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 밤은 국민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것이다. 우리는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한 우리의 용기와 투지를 증명해 보였고, 모든 우방국들이 


우릴 지지하고 있다. 나는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용감한 군인들과 정치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대한민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면 용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들의 공화국의 충실한 시민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승만에 서울시민에게 처음으로 방송한 내용의 전문임.


어디에도 '서울시민 여러분, 서울은 안전합니다. 서울을 끝까지 사수하십시오'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한 나라의 대통령, 국군통수권자가 전쟁이 발발했고 적이 쳐들어 오는데 피난가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상식임.


전쟁은 물자싸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심리싸움이기도 하다.


맥아더가 미 합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인천과 서울은 수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인천을 공략해 서울을 탈환 후 적군의 사기를 꺽자라는 심리적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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