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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 / 시애틀 여행


미국 시애틀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 중 1곳이다.



시애틀 타워




마치 도시의 마천루를 넌지시 지켜보듯 서 있는 스페이스 니들은 1962년 시애틀 국제 박람회를 위해 지었다. 높이 184미터의 타워. 비행접시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당시만 해도 전 미국인을 깜짝 놀라게 한 외관을 뽐낸 랜드마크다. 완공 후 몇 년간은 시애틀에서 가장 높은 건물 타이틀을 유지하기도 했다. 오늘날 다운타운에는 컬럼비아 센터(Columbia Center, 285m)처럼 스페이스 니들을 내려다보는 고층 건물이 여러 개 솟아 있다. 하지만 마천루의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우뚝 자리 잡은 이 독특한 외관의 타워만큼 눈길이 가는 것은 찾을 수 없다. 명멸하는 고층 빌딩과 성스러운 레이니어 산(Mount Rainier)을 배경으로 스페이스 니들이 도도하게 서 있는 장면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만큼 감동적이다.

 

스페이스 니들의 매표소를 지나서 진입 경사로를 따라 타워를 1바퀴쯤 돌고 나면 전망대까지 곧장 오르는 엘리베이터 탑승장에 닿는다. 일단 블루 스크린 앞에서 기념 사진 1장을 찍고(추후에 합성 사진을 웹사이트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순서를 기다린다. 전망대는 158미터 위에 자리하는데, 엘리베이터 탑승 후 정확히 41초 후에 도착한다. 스페이스 니들을 360도로 두르는 실외 전망대를 걸으며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다채롭다. 세계 여느 대도시에 가도 이런 전망대쯤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나, 이 만큼 갖가지 모습으로 둘러싸인 곳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뻔한 풍경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시선을 자극한다. 다운타운, 항구, 주택가, 산업 지대, 호수, 해안, 산맥 등이 곳곳에 펼쳐지고, 그사이로 차량과 보트, 수상비행기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주변 자연환경도 독특하다. 시애틀은 태평양과 연결되는 복잡한 해안선의 퓨젯 사운드(Puget Sound) 만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형이 들쭉날쭉하다. 동쪽의 캐스케이드(Casecade) 산맥과 서쪽의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은 먼 곳에서 희미하게 자리해 도시를 낮은 병풍처럼 둘러싼다. 하여, 스페이스 니들에 오르면, 미국 북서부 해안 최대의 도시와 미묘한 자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 하겠지만.

 



산에 오르기


미국의 원주민은 레이니어 산을 타코마(Tacoma)라고 불렀다. ‘거대하고 하얀 산’이라는 뜻. 먼발치에서 시애틀을 호위하는 듯한 이 하얀 산봉우리는 약 100만 년 전 태어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캐스케이드 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다. 알래스카에 있는 산을 제외하면, 미국에서 네 번째로 높다. 산맥은 약 4,000만 년 전에 융기했으니까 그쪽 세계에서 레이니어 산은 매우 젊은 녀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폭발은 1896.



953제곱킬로미터의 레이니어 산 국립공원은 시애틀라이트(Seattlite, 시애틀 시민)가 모험 정신을 테스트하거나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곳이다. 시애틀 관광 엽서에 등장하는 레이니어 산은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듯하나, 실제로는 차로 2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일단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빙하와 눈에 덮여 있는 정상과 숲이 울창한 산악 지대, 백컨트리 스키어를 위한 설원과 하이커를 위한 트레일, 잠시 머물다 가는 소풍객에 알맞은 초원과 며칠 머물다 가는 캠퍼를 위 한 야영장, 클라이머를 유혹하는 봉우리들이 곳곳에 기다리고 있다.


에버그린 이스케이프스(Evergreen Escapes) 여행사의 가이드 마티(Marty)는 일행을 레이니어 산 중턱의 해발 약 1,650미터에 자리한 파라다이스(Paradise)로 안내한다. 여행자들의 주요 집결지 중 1곳인 파라다이스는 산 정상을 밟으려는 등반가뿐 아니라 하이커와 스키어로 야외 주차장부터 빈 자리가 없다. “이곳에는 다양한 야생동물과 3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데, 그리즐리베어와 늑대는 없어요. 또 막상 스키어를 위한 리프트도 없기 때문에 산악 스키를 주로 즐기죠.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음… 1년에 한 6,000명쯤 될 거예요.” 마티가 말한다. 그는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화산 탐험 가이드로 일하다가 고향인 워싱턴 주로 다시 돌아왔다. 레이니어 산도 화산이니 이를테면, 그는 화산 전문 가이드인 셈. 초여름의 레이니어 산 고지대에는 아직 두터운 눈에 덮여 있다. 한여름에 들어서야 눈이 녹고 야생화가 만발한 초지가 등장한다고. 빙하와 만년설이 눌러앉은 정상부의 색은 1년 내내 변함없다. 레이니어 산을 정복하려는 이들은 정상 밑 베이스캠프에서 선잠을 자고 태양열에 뜨거워진 빙하가 움직이기 전 이른 새벽부터 등정을 시작할 것이다.


마티와 함께 스노슈잉으로 약 30분쯤 걸으니 머틀 폭포(Myrtle Falls)에 도착한다. 숱한 겨울을 이겨낸 폭포는 성기게 녹은 눈밭 사이로 물줄기를 흘린다. 사실 눈 덮인 레이니어 산에는 정확한 코스랄 게 없다. 앞서 간 이의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아무런 흔적 없이 팽팽한 눈밭 위를 걸어가거나 둘 중 하나다. 가끔 마주치는 스키어는 긴 자국을 남기며 저 아래로 사라진다. 어떤 이는 스키나 스노보드를 맨 채 무작정 높은 곳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다. 누구든지 잠시 멈출 때마다 삐죽삐죽 이빨을 드러낸 것 같은 암봉과 캐스케이드 산맥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광경에 넋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터. 저 거대하고 하얀 산을 쉽게 넘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길 위의 탐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애틀은 지금만큼 핫한 도시가 아니었다. 인구도 줄어들었고 도시 경제도 시원찮았다. 청춘들 사이로 그런지 록이 등장하기 딱 좋은 침체기였다. 게다가 여름철 몇 개월을 빼면 시애틀의 날씨는 적잖이 우중충하다. 안개와 비, 가끔 비치려는 햇살과 그것을 여지없이 가로막는 구름. 차고에서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고독에 함몰될 뻔했다. 다행히 어려운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IT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닷컴 시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차고에서 나온 그런지 록은 이 도시에 문화적 성취감을 심어주었다. 사실 어떤 커피 브랜드가 대도시를 통째로 대변한다는 건 가볍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카페 라테 1잔 안에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애틀 박람회가 열리던 시애틀 센터(Seattle Center) 주변에는 스페이스 니들뿐 아니라 공연장, 전시장, 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그중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뮤지엄은 박람회 이후 전 세계가 시애틀에 집중하게 만든 유일무이한 문화적 사건이자 유행의 집합소다. 그런지 록과 시애틀이 배출한 걸출한 음악가가 살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립자 폴 앨런(Paul Allen)이 주도해 완성했는데,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디자인한 뮤지엄 외관은 시애틀 출신인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기타 선율처럼 거칠게 출렁인다. 전시장은 록 음악 애호가의 환상을 절반쯤 채워준다. 약 8만 점에 이르는 소장 자료 중 일부가 낮은 조도의 실내 조명을 받으며 신화의 유물같이 전시되어 있다.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펄 잼(Pearl Jam), 사운드 가든(Sound Garden) 등 시애틀 그런지 록을 이끈 밴드의 탄생과 소멸,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직접 쓴 가사 노트, 헨드릭스가 부순 팬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시애틀에서 스타덤에 오른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첫 번째 앨범 등. 미국 대중음악과 팝 컬처의 역사를 학습한 뒤에는 3층으로 가보자. 사운드 랩(Sound Lab) 스튜디오에 들어가 각종 악기를 직접 신나게 다뤄볼 수 있으니까.




시애틀 센터의 또 다른 명소는 2012년 5월 개관한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Chihuly Garden and Glass). 미국의 유리 공예가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매혹적인 작품이 약 300제곱미터 규모의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를 창조하는 듯하다. 유리 소재로 구현한 비정형의 형태와 강렬한 색상은 빛을 살짝 받을 때마다 화려함을 과시한다. 투명 온실에 서서 천장에 매달린 그의 작품을 보면, 스페이스 니들과 시애틀의 푸른 하늘이 3차원의 거대한 캔버스를 이룬다. 치훌리 가든 외에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Pacific Science Center)나 매카우 홀(McCaw Hall)까지 둘러본 후에는 모노레일을 타보자. 이 역시 1962년 박람회에 맞춰 개통한 대중교통 수단. 60년이 넘었지만, 전혀 시대에 뒤처져 보이지 않는다. 모노레일의 종착역 웨스틀레이크 센터(Westlake Center)에서 그 유명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시애틀의 현재라고 부를 만한 다운타운을 가로질러 과감히 1세기 전에 지은 마켓 속으로 들어간다. 마치 세상의 모든 자영업자와 능력자들이 한데 모인 만물시장 같은 곳. 신선한 튤립과 50년 전 동전, 유쾌한 입담의 생선 가게와 풍선 검을 잔뜩 붙여 놓은 극장, 세계 최초의 스타벅스와 마지막 주인을 찾는 LP 앨범 등. 모든 것을 포용하며 동시에 개성을 존중하는 시애틀의 진실을 이곳에서 마주칠 것이다.


EMP 뮤지엄 입장료 25달러, empmuseum.org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 입장료 27달러, chihulygardenandgla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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